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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과 사랑, 그리고 절망이 한 사람의 삶을 어디까지 몰아붙일 수 있을까요?
    영화 〈꽃놀이 간다〉는 병든 몸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딸 수미와, 죽음을 앞둔 어머니의 현실적인 고통을 통해 ‘희망이라는 이름의 집착’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작품입니다. 잔잔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이 영화는 관객의 마음을 조용히 파고들며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1. 병원비와 신앙 사이, 수미가 선택한 유일한 믿음


    영화 꽃놀이 간다의 출발점은 매우 현실적입니다. 중증 지병을 앓고 있는 수미, 그리고 계속 밀려만 가는 어머니의 병원비. 병원 측의 ‘중간 정산’ 요구는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경제적 약자가 마주하는 냉혹한 현실의 상징처럼 다가옵니다. 더 이상 입원이 불가능하다는 통보 앞에서 수미는 합리적인 선택을 할 여유조차 잃습니다. 그녀가 붙잡은 것은 오직 ‘기도하면 낫는다’는 믿음뿐입니다.

    이 장면에서 영화는 신앙을 미화하지도, 조롱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절망 속에서 인간이 마지막으로 매달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습니다. 수미의 난동은 광기가 아니라 구조 요청에 가깝고, 그 절박함은 관객에게 불편한 공감을 안깁니다. 꽃놀이 간다는 이 지점에서 단순한 가족 영화가 아닌, 사회적 현실을 담은 휴먼 드라마로 방향을 분명히 합니다.

    2. 집으로 돌아온 엄마, 희망이 짐이 되는 순간


    강제 퇴원 후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를 돌보는 수미의 일상은 고통의 연속입니다. 병원이라는 최소한의 안전망이 사라진 공간에서, 수미는 보호자이자 간병인, 그리고 생계 책임자 역할까지 떠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더욱 잔인해지는 순간은, 어머니의 상태가 점점 악화되는데도 수미만이 그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그녀는 다음 주로 예정된 꽃놀이 관광을 끝까지 믿습니다. 이 장면에서 ‘꽃놀이’는 단순한 외출이 아니라, 죽음을 유예해 줄 마지막 기회처럼 묘사됩니다. 관객은 이미 결과를 예감하면서도, 수미의 희망을 쉽게 부정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희망이 무너지면, 수미 자신도 함께 무너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꽃놀이 간다는 이렇게 희망이 때로는 사람을 살리기도, 동시에 파괴하기도 한다는 모순을 조용히 보여줍니다.

    3. 꽃은 피지 않아도, 기억은 남는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꽃놀이 간다는 감정을 과하게 몰아붙이지 않습니다. 눈물을 강요하는 음악이나 극적인 연출 대신, 일상의 소음과 침묵을 통해 상황의 무게를 전달합니다. 특히 수미와 어머니 사이의 짧은 대화, 말없이 바라보는 시선은 어떤 대사보다 강한 울림을 줍니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신, 남겨진 사람의 마음속에 무엇이 남는지를 보여줍니다. 꽃놀이는 결국 계획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통해 수미가 지켜내려 했던 것은, 어머니와 함께한 마지막 기억이자 스스로 무너지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희망이었습니다. 〈꽃놀이 간다〉는 삶이 항상 구원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그 선택이 헛되지 않았음을 조용히 증명하는 영화입니다.

    한 줄 평


    희망은 때로 현실보다 잔인하지만, 그럼에도 사람이 끝까지 붙잡게 되는 유일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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