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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영화 바림개비는 복싱을 꿈꾸던 청춘 ‘정훈’과 위험에서 서로를 구하며 엮인 ‘승희’의 이야기 속에, 불안정한 삶과 사랑, 그리고 현실의 무게에 흔들리는 인간을 섬세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폭력적인 가정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정훈, 그리고 그에게 의지가 되었던 승희.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 둘의 관계는 오해와 불신 속에서 조금씩 비틀어진다. 흩날리는 바람개비처럼, 마음은 가까워지고 멀어지기를 반복한다.

1. 상처 위에 세운 꿈, 그리고 무너진 청춘의 시작
정훈(차선우)은 폭력을 일삼던 아버지와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싶어 했다. 그는 복싱이라는 ‘정당한 싸움’을 통해 자신만의 길을 만들고자 했고, 그것이 유일한 희망이자 탈출구였다. 그러나 어느 날, 위험에 놓인 승희(유지애)를 돕는 과정에서 그는 뜻하지 않은 큰 싸움에 휘말려 심각한 부상을 입게 된다. 그 부상은 단순한 신체적 상처가 아니라 그의 미래를 통째로 흔들어 버리는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정훈의 ‘꿈의 상실’은 영화의 첫 번째 전환점이다. 단순히 꿈을 잃었다는 사실보다, 그것을 지탱하던 자존감과 삶의 방향까지 함께 무너졌다는 점에서 깊은 여운을 남긴다. 영화는 이러한 변화 과정을 빠르게 지나치지 않고, 정훈이 겪는 혼란과 무력감을 차분하고 현실적으로 묘사하며 관객의 감정 몰입을 끌어낸다.
2. 다시 만난 두 사람, 그러나 마음은 이미 서로 다른 곳에
성인이 된 정훈과 승희는 우연처럼 다시 마주치며 서로의 삶에 조용히 스며든다. 시간의 흐름은 두 사람을 조금 더 성숙하게 만들었지만, 그 속에 쌓여 있던 작은 균열은 어느 순간 깊은 틈으로 벌어진다. 밝은 미래를 꿈꾸던 두 사람에게 ‘현실’이라는 장벽은 생각보다 더 견고했다.

정훈은 마음속에서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끌어안고 있다. 그는 새롭게 관계를 이어가기엔 자신이 너무 부족하다는 열등감을 느끼고, 승희에게 부담만 줄까 두려워한다. 반면, 승희는 정훈을 돕고 싶지만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닿지 못한다. 서로를 향한 진심이 있음에도 불신과 오해가 쌓이고, 그 감정들은 결국 두 사람을 점점 멀어지게 만든다.

영화 바림개비는 이 갈등을 자극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대신 현실 속 연인들에게 흔히 찾아오는 ‘설명되지 않은 감정의 어긋남’을 섬세하게 그린다. 그래서 더욱 아프고, 그래서 더욱 공감된다.
3. 흩날리는 선택의 순간—정훈의 삶은 어디로 가는가
마지막 장면으로 갈수록 정훈의 인생은 바람개비처럼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는 잘 살고 싶지만 상황은 뜻대로 되지 않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지만 자신의 상처가 그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결국 정훈의 가장 큰 적은 ‘과거의 그림자’이자 ‘스스로에 대한 불신’이다.

승희와의 관계 또한 한순간에 정답을 찾을 수 없다. 서로에게 마음이 있지만, 두 사람은 각자의 현실 앞에서 망설이고 흔들린다. 영화는 이 지점에서 ‘사랑의 완성’을 보여주는 대신, 삶의 진짜 모습—완벽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 자체가 의미가 있음을 조용하게 전한다.


정훈의 삶은 계속 흔들리지만 그 흔들림 속에서 그는 비로소 스스로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관객은 그 모습을 통해 우리의 삶 역시 완벽하게 고정된 방향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마지막 한 줄 평
흩날리는 삶 속에서도 서로를 바라보려 했던 두 청춘의 조용한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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