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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이 더 이상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무엇을 써 내려갈 수 있을까.
    영화 시는 한 노년 여성이 시를 배우며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존엄과 책임에 대해 조용하지만 깊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이창동 감독 특유의 절제된 연출과 윤정희의 인생 연기가 만나, 한국 영화사에 오래 남을 울림을 완성한다.

    1. 시를 배우며 세상을 다시 바라보는 여자, 미자

    한강을 끼고 있는 경기도의 작은 도시. 낡은 서민 아파트에서 중학생 손자와 단둘이 살아가는 미자(윤정희)는 유난히 화사한 옷차림과 꽃 장식 모자를 즐겨 쓰는 인물이다. 나이에 비해 엉뚱하고 호기심 많은 그녀는 어느 날 동네 문화원에서 우연히 ‘시’ 강좌를 듣게 된다. 그동안 특별할 것 없던 일상에 처음으로 ‘바라보는 법’을 배우게 된 것이다.

    미자는 시를 쓰기 위해 주변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한다. 나뭇잎의 흔들림, 강물의 흐름, 사람들의 표정까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시선으로 마주한다. 영화는 이 과정을 통해 시란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태도임을 말한다. 윤정희는 과장 없는 연기로 미자의 설렘과 서툼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관객이 자연스럽게 그녀의 시선에 동화되도록 만든다.

    2. 아름다움이 무너지는 순간, 피할 수 없는 현실

    그러나 영화 시는 끝까지 따뜻한 감성에 머무르지 않는다. 미자는 손자와 관련된 예기치 못한 사건과 마주하게 되고, 그동안 자신이 바라보던 세상이 결코 아름답기만 한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창동 감독은 이 사건을 자극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대신 침묵과 여백을 통해 관객이 스스로 상황의 무게를 느끼게 만든다.

    미자는 점점 시를 쓰는 것이 어려워진다. 아름다운 언어로 덮어버리기에는 현실이 너무 잔혹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 지점에서 인간이 외면하고 싶어 하는 책임과 죄책감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미자의 혼란과 침묵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사회 속에서 선택을 미루며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은유처럼 다가온다.

    3. 시란 무엇인가, 그리고 인간의 존엄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라는 제목의 의미는 더욱 분명해진다. 시는 아름다운 표현을 나열하는 행위가 아니라, 고통스러운 진실 앞에서도 끝내 눈을 돌리지 않으려는 용기에 가깝다. 미자가 마지막까지 붙잡고자 했던 것은 문학적 완성도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이었다.
    시는 관객에게 묻는다.

    우리는 불편한 진실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선택은 우리를 어떤 인간으로 남게 하는가. 조용한 엔딩 이후에도 긴 여운이 남는 이유는, 영화가 쉽게 답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칸 영화제 각본상 수상작이라는 명성보다도, 이 작품이 오래 회자되는 이유는 바로 이 묵직한 질문에 있다.

    마지막 한 줄 평

    영화 는 아름다움을 말하기 위해 끝까지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가장 조용하고 가장 용기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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