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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을 쓰는 것이 죄가 되던 시절, 누군가는 총 대신 연필을 들었습니다. 영화 <말모이>는 일제강점기 경성을 배경으로, 사전을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거창한 영웅담이 아닌, 말과 사람, 그리고 마음이 모여 역사가 되는 순간을 조용하지만 깊이 있게 그려냅니다.

    1. 까막눈 판수와 조선어학회, 뜻밖의 만남


    1940년대 경성. 우리말이 점점 사라지고 일본어 사용이 강요되던 시대, 판수는 생계를 위해 극장에서 일하다 해고당하고 아들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도둑질을 시도합니다. 하지만 실패하고, 하필 그 가방의 주인이 조선어학회 대표 정환이었다는 설정은 영화의 중심 갈등을 단번에 만들어냅니다.

    전과자에다 글도 읽지 못하는 판수가 ‘사전 편찬’이라는 고상한 작업에 어울릴 리 없다고 생각하는 정환의 반응은 너무도 현실적입니다. 그러나 다른 학회 회원들의 설득과 판수의 절박한 사정 속에서, 그는 글을 배우는 조건으로 조선어학회에 합류하게 됩니다.

    이 과정은 단순한 설정을 넘어, ‘배움’이 계급과 신분을 넘는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판수는 처음엔 돈이 목적이었지만, 글자를 하나씩 깨우치며 말이 가진 힘과 의미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영화 말모이는 이 변화를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그려내며, 관객이 자연스럽게 판수의 감정에 동화되도록 만듭니다.

    2. 말모이, 말이 모여 역사가 되다


    정환이 중심이 된 조선어학회의 목표는 단 하나, 우리말 사전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전국 각지에서 쓰이는 말을 모으는 ‘말모이’ 작업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사라질지도 모를 정체성을 붙잡는 일이었습니다.
    영화는 이 과정을 통해 말이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한 민족의 기억과 삶 그 자체임을 보여줍니다.

    판수는 시장과 골목,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자연스럽게 말을 모읍니다. 글을 몰랐기에 오히려 말의 생생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인물이라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반대로 정환은 학문적 신념과 이상에 충실했지만, 판수를 통해 ‘우리’라는 공동체의 감정을 다시 배우게 됩니다.
    이 두 인물의 대비는 영화 말모이를 단순한 역사 영화가 아닌, 사람 이야기로 완성시키는 핵심 요소입니다.

    3. 일제의 감시 속에서 완성되어 가는 용기


    시간이 흐를수록 일제의 감시는 점점 더 노골적으로 변하고, 조선어학회의 활동은 위험에 노출됩니다. 하지만 영화는 공포와 탄압을 자극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숨죽여 버티는 일상의 긴장감으로 표현합니다.
    사전을 만드는 일이 곧 저항이었던 시대, 말 한 줄을 적는 행위가 목숨을 건 선택이었던 현실은 관객에게 묵직한 여운을 남깁니다.

    판수와 정환, 그리고 학회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두려움을 견뎌냅니다. 그 모습은 영웅적이기보다 지극히 인간적이어서 더욱 진하게 다가옵니다. 말을 지킨다는 것은 결국 사람을 지키는 일이라는 메시지가 이 영화의 가장 큰 울림입니다.
    영화 말모이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방식으로, 우리가 지금 아무렇지 않게 쓰는 말이 얼마나 큰 희생 위에 놓여 있는지를 일깨워줍니다.

    마지막 한 줄 평


    우리가 쓰는 말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용기와 마음으로 이어져 왔음을 잊지 않게 만드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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